
케락 성: 십자군의 오만이 불러온 전쟁의 요새
요르단 남부의 건조한 고원 위에 거대한 돌덩이처럼 자리한 케락 성(Kerak Castle)은 단순한 중세 성이 아니다. 이곳은 십자군 전쟁의 격렬한 충돌 속에서 권력과 욕망, 그리고 도발이 뒤엉킨 공간이었다. 사막과 계곡을 내려다보는 전략적 위치 덕분에 케락 성은 중동을 오가는 교역로를 통제하는 핵심 요충지였고, 그만큼 수많은 군대가 이 성을 노렸다.
케락 성은 12세기 중반, 예루살렘 왕국의 십자군 세력에 의해 건설되었다. 겉으로는 성지를 방어하기 위한 요새였지만, 실제로는 상인들의 이동을 통제하고 세금을 걷는 권력의 중심지였다. 신앙을 명분으로 세워졌지만, 이 성의 본질은 군사와 경제를 장악하는 지배의 장치였다.
1. 사막 위의 전략적 요충지
케락 성이 세워진 이유는 단순하다. 위치가 완벽했기 때문이다. 이 성은 다마스쿠스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중요한 무역로를 감시할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을 차지하면 대상(隊商)의 이동을 통제할 수 있었고, 전쟁 시에는 병력의 이동을 차단할 수 있었다.
성의 구조는 전형적인 십자군 요새 양식을 따르면서도, 지형을 최대한 활용했다. 두꺼운 석벽과 좁은 통로, 어두운 지하 저장고는 장기 포위를 견디기 위한 설계였다. 성 내부에는 거대한 홀과 병사 숙소, 물 저장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고, 이는 수개월간 외부 지원 없이도 버틸 수 있도록 만든 구조였다.
그러나 케락 성은 단순히 방어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었다. 이곳은 십자군 세력이 이슬람 상인들을 통제하고 약탈하기 위한 거점이기도 했다. 성벽 위에서 바라보는 대상 행렬은 단순한 교역이 아니라,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 점에서 케락 성은 신앙의 요새라기보다 경제적·군사적 지배의 성채에 가까웠다.
2. 레이날드 드 샤티용: 도발과 오만의 상징
케락 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레이날드 드 샤티용(Reynald de Châtillon)이다. 그는 이 성의 영주로서 잔혹하고 대담한 행동으로 악명을 떨쳤다.
레이날드는 이슬람 상인들의 대상 행렬을 반복적으로 공격했고, 심지어 휴전 협정을 무시하며 약탈을 감행했다. 그는 성지 순례를 떠나는 이슬람인들까지 공격하며 살라딘(Saladin)을 자극했다.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군사 전략이 아니라, 권력과 오만이 뒤섞인 도발이었다.
결국 그의 행동은 거대한 전쟁을 불러왔다. 살라딘은 이를 명분으로 십자군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했고, 이는 1187년 하틴 전투(Battle of Hattin)로 이어진다. 이 전투에서 십자군은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고, 예루살렘은 함락되었다.
레이날드는 살라딘에게 직접 처형되었고, 그의 도발은 십자군 세력의 몰락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케락 성은 단순한 요새가 아니라, 한 인물의 오만과 정치적 계산이 불러온 전쟁의 상징이 되었다.
3. 포위와 생존, 그리고 쇠퇴
케락 성은 여러 차례 포위 공격을 견뎌냈다. 특히 살라딘은 이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압박을 가했다. 성 내부에서는 긴장과 공포가 끊이지 않았고, 포위전은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라 심리전이기도 했다.
성 안의 병사와 주민들은 식량과 물을 아끼며 버텼고, 성벽 위에서는 끊임없이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십자군 세력의 전반적인 약화는 결국 케락 성의 운명을 바꾸었다. 시간이 흐르며 이 지역은 이슬람 세력의 통제 아래로 들어갔고, 성은 더 이상 십자군의 거점이 아니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케락 성은 완전히 파괴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그 거대한 석조 구조는 여전히 사막 위에 서 있으며, 과거의 전쟁과 권력 투쟁을 조용히 증언한다. 무너진 벽과 어두운 통로는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신앙의 이름으로 벌어진 전쟁의 흔적이다.

마무리: 신앙인가, 지배인가
케락 성은 십자군 전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요새 중 하나다. 겉으로는 성지를 지키기 위한 방어 거점처럼 보이지만, 그 실체는 교역로를 통제하고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권력의 도구였다. 이곳에서 벌어진 도발과 보복, 포위와 처형은 신앙과 정치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지금 케락 성을 바라보면, 웅장한 성벽과 거대한 홀에 압도되지만, 그 돌 하나하나에는 전쟁의 긴장과 인간의 욕망이 스며 있다. 케락 성은 단순한 중세 성이 아니라, 오만과 권력이 만들어낸 전쟁의 무대였다. 그리고 그 무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막 위에서 침묵 속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