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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카손 성채: 이단과 십자군, 그리고 돌로 굳어진 전쟁의 도시

by spartan-kimkudo 2026. 2. 26.

카르카손 성채: 이단과 십자군, 그리고 돌로 굳어진 전쟁의 도시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 지방의 평야 위에 마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거대한 성곽 도시가 솟아 있다. 수십 개의 탑과 이중 성벽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이 요새는 바로 카르카손 성채다.

오늘날 관광객이 걷는 이 성벽은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중세에는 피와 화염, 종교적 광기가 교차한 전장의 중심이었다. 카르카손은 단순한 성이 아니라, 하나의 완전한 요새 도시였다.

1. 로마의 기초 위에 세워진 중세 요새

카르카손의 역사는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3세기 무렵 이 지역에는 방어벽이 존재했다. 로마 제국이 쇠퇴한 뒤에도 이 요새는 전략적 요충지로 남았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보는 거대한 성곽 구조는 주로 12~13세기 중세에 형성된 것이다. 랑그도크 지역은 프랑스 왕권의 직접 통제 아래 있지 않았고, 지역 영주들이 상당한 자율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카르카손은 그 중에서도 강력한 거점이었다.

2. 알비주아 십자군과 이단 전쟁

13세기 초, 이 지역에는 가톨릭 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카타리파가 퍼져 있었다. 이들은 금욕과 이원론적 신앙을 강조했으며, 교회의 권위를 부정했다.

이에 교황은 알비주아 십자군을 선포한다. 북부 프랑스 귀족과 기사들이 남부로 내려와 “이단 정벌”을 명분으로 전쟁을 벌였다.

1209년, 카르카손은 십자군에 포위된다. 당시 성은 방어에 유리했지만, 물 공급이 차단되면서 결국 항복한다. 주민들은 추방되었고, 도시의 통제권은 북부 귀족 시몽 드 몽포르에게 넘어갔다.

이 사건은 단순한 종교 분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프랑스 왕권이 남부를 흡수하는 정치적 전환점이었다.

카르카손은 이단의 도시에서 왕권의 요새로 변모했다.

3. 프랑스 왕권의 국경 방어선

십자군 이후 카르카손은 프랑스 왕실의 직할 요새가 된다. 특히 아라곤 왕국(현재 스페인 지역)과의 국경 방어를 위해 대대적 강화가 이루어진다.

이 시기 성곽은 더욱 확장되고, 이중 성벽 구조가 완성된다.

  • 외벽과 내벽 사이에 넓은 공간 확보
  • 적이 첫 번째 성벽을 돌파해도 두 번째 방어선 존재
  • 50개가 넘는 방어 탑

카르카손은 단순한 성이 아니라, 완전한 군사 도시였다.

4. 건축 구조 분석: 중세 방어 건축의 교과서

카르카손 성채는 중세 군사 건축의 정수를 보여준다.

 

① 이중 성벽 시스템

외부 성벽과 내부 성벽이 분리되어 있다. 적은 좁은 공간에 갇힌 채 집중 공격을 받게 된다.

② 반원형 탑

탑은 각도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는 석궁과 화살 방어에 효과적이었다.

③ 성문 방어 구조

주 출입구에는 도개교와 함정 구조가 배치되었다. 적은 좁은 통로를 통과해야 했고, 위에서 공격을 받았다.

④ 고딕 요소와 군사 기능 결합

성 내부에는 성 나자르 대성당이 자리한다. 종교 공간과 군사 공간이 한 도시 안에 공존한다.

 

카르카손은 장식적 궁전이 아니라, 전쟁을 전제로 설계된 구조였다.

5. 몰락과 복원

17세기 이후 국경이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카르카손은 전략적 중요성을 잃는다. 점차 방치되었고, 일부는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

19세기, 건축가 비올레 르 뒤크가 대대적 복원 작업을 시작한다. 그는 중세 스타일을 재현하며 성곽을 복구했다. 그러나 그의 복원은 “이상화된 중세”라는 비판도 받는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카르카손은
중세 원형 + 19세기 낭만주의 복원이 겹친 모습이다.

6. 전설과 상징

카르카손에는 전설도 있다. 전쟁 중 식량이 떨어지자 돼지에게 마지막 곡물을 먹인 뒤 성벽 밖으로 던져 적을 속였다는 이야기다. 적은 “저 성은 아직 식량이 넘친다”고 착각해 철수했다는 전설이다.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이야기는 이 요새가 얼마나 오랫동안 전쟁과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마무리: 돌 위에 남은 권력의 흔적

카르카손 성채는 단순히 아름다운 중세 관광지가 아니다. 이곳은 종교 전쟁, 왕권 확장, 국경 방어, 복원 논쟁까지 모두 담고 있는 복합적 공간이다.

성벽 위를 걸으면 이해하게 된다. 왜 중세의 권력은 높은 곳에, 두꺼운 벽 안에 자신을 가두었는지를.

카르카손은 묻는다.

신앙은 왜 전쟁을 낳았는가?
그리고 권력은 왜 요새를 필요로 했는가?

수십 개의 탑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중세의 긴장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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