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마리스 성: 완벽한 설계로 태어난 미완성의 요새
웨일즈 북부 앵글시 섬의 평평한 해안 평야 위에는 거대한 회색 성벽이 펼쳐져 있다. 주변에는 높은 산도 없고 절벽도 없다. 그 대신 정확하게 계산된 성벽과 탑, 그리고 넓은 해자가 성을 둘러싸고 있다. 이것이 바로 보마리스 성이다.
보마리스 성은 단순한 중세 성이 아니라 군사 건축의 정점을 보여주는 요새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완벽한 설계에도 불구하고 이 성은 끝내 완전히 완성되지 못했다.
1. 웨일즈 정복 이후 세워진 마지막 성
13세기 후반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는 웨일즈를 완전히 정복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다. 1282년 마지막 웨일즈 왕 루엘린 아프 그리피드가 전투에서 사망하면서 웨일즈 독립은 사실상 끝나게 된다.
하지만 에드워드 1세는 단순히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만으로는 웨일즈를 통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웨일즈 전역에 강력한 성채 네트워크를 건설한다. 이 요새 체계는 훗날 철의 고리(Ring of Iron)라 불리게 된다.
이 네트워크에는 다음과 같은 성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 콘위 성
- 카나번 성
- 하를레흐 성
-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마리스 성
보마리스 성은 이 성채 시스템의 마지막이자 가장 정교한 요새였다.
2. 자연 요새가 없는 평지 성
대부분의 중세 성은 자연 방어 지형을 활용한다. 절벽이나 강, 높은 산 위에 성을 세워 공격을 어렵게 만드는 방식이다.
그러나 보마리스 성은 완전히 평지 위에 세워졌다.
이 때문에 건축가들은 자연 대신 순수한 군사 설계만으로 방어 체계를 구축해야 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다음과 같은 구조였다.
- 거대한 해자
- 두 겹의 성벽
- 수많은 방어탑
- 계산된 방어 각도
성 전체는 마치 정교한 기하학 도형처럼 배치되어 있었다.
3. 동심원 구조의 완벽한 방어 설계
보마리스 성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동심원 요새 구조(Concentric Castle)이다.
외성
성의 가장 바깥쪽에는 높은 성벽과 여러 개의 탑이 배치되어 있다. 적군이 처음 마주하게 되는 방어선이다.
내성
외성을 돌파하더라도 바로 안쪽에 또 다른 높은 성벽이 존재한다. 두 번째 방어선이다.
중앙 구역
성 내부에는 병영, 창고, 왕실 거주 공간 등이 배치될 예정이었다
.
이 구조 덕분에 적이 외성을 점령하더라도 내성에서 계속 방어가 가능했다. 중세 군사 설계 중 가장 발전된 형태였다.
4. 바다와 연결된 해자 시스템
보마리스 성을 둘러싼 해자는 단순한 물길이 아니었다.
이 해자는 메나이 해협(Menai Strait)과 연결되어 있었다. 바닷물이 해자로 들어와 항상 물이 채워졌다.
이 구조는 매우 중요한 군사적 장점을 제공했다.
- 성이 포위되어도 해상 보급 가능
- 식량과 병력 공급 유지
- 해군과 협력 가능
중세 요새 중에서도 이런 구조를 가진 성은 매우 드물었다.

5. 천재 건축가의 작품
보마리스 성은 중세 최고의 군사 건축가로 알려진 제임스 오브 세인트 조지가 설계했다.
그는 이미 여러 웨일즈 성을 건설한 경험이 있었고, 보마리스 성에서 자신의 건축 기술을 완전히 발전시켰다.
성의 탑 배치는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도록 설계되었고, 성문은 직선이 아닌 굴곡진 통로로 만들어져 적의 돌진을 어렵게 했다.
이 때문에 보마리스 성은 오늘날까지도 중세 군사 건축의 교과서로 평가된다.
6. 그러나 완성되지 못한 이유
보마리스 성은 원래 훨씬 더 거대한 계획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공사는 점점 어려워졌다.
가장 큰 이유는 재정 문제였다. 에드워드 1세는 동시에 스코틀랜드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막대한 전쟁 비용이 필요했다.
또한 성 건설에는 수천 명의 노동자가 필요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인력 확보도 어려워졌다.
결국 보마리스 성 공사는 중단되었고, 계획된 규모의 일부만 완성된 채 남게 된다.
7. 미완성 속에서도 완벽한 구조
흥미로운 점은 성이 완전히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군사 설계가 거의 완벽하게 구현되었다는 것이다.
외성과 내성, 탑의 배치, 해자 구조 등 핵심 방어 시스템은 대부분 완성되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보마리스 성은 완성되었다면 중세 성의 궁극적인 형태였을 것이다.”
8. 이후 역사 속 역할
14세기 이후 보마리스 성은 군사 요새로 계속 사용되었다.
웨일즈 반란이 줄어들면서 성의 중요성은 점차 감소했지만, 여전히 전략적 거점으로 남아 있었다.
17세기 영국 내전 때는 왕당파와 의회파가 이 성을 두고 충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성은 점차 방치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보는 폐허 형태로 남게 되었다.
9. 오늘날의 보마리스 성
현재 보마리스 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웨일즈 성채 시스템의 일부다.
성벽 위에 서면 메나이 해협과 앵글시 섬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거대한 해자와 탑을 바라보면 중세 군사 건축의 정교함을 직접 느낄 수 있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중세 군사 건축의 교과서와 같은 장소다.

마무리: 완벽한 설계, 그러나 미완성의 요새
보마리스 성은 모순적인 성이다.
그것은 가장 완벽한 설계를 가진 중세 성이지만 끝내 완성되지 못한 요새였다.
하지만 어쩌면 바로 그 미완성 덕분에 우리는 중세 건축가들의 계획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성벽 위에 서면 거대한 해자와 탑, 그리고 정교하게 계산된 방어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보마리스 성은 말없이 증명한다.
완벽함은 언제나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미완성 속에서도 드러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