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사다 요새: 제국에 맞선 최후의 선택, 사막 위의 고립된 성
이스라엘 사해 서쪽, 해발 약 400미터 높이의 거대한 바위 고원 위에 자리한 마사다 요새는 단순한 고대 유적이 아니다. 이곳은 로마 제국이라는 세계 최강의 권력에 맞선 한 공동체의 마지막 무대였다. 절벽 아래는 깎아지른 낭떠러지이고, 위로 오르는 길은 구불구불한 좁은 통로 하나뿐이다. 이 극단적인 고립은 훗날 저항의 상징이 된다.
1. 왜 반란은 시작되었는가
서기 66년, 유대 지역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 단순한 세금 문제가 아니었다. 로마의 무거운 조세 정책과 총독들의 부패, 그리고 무엇보다 종교적 충돌이 핵심이었다.
유대 사회는 철저한 유일신 신앙을 지녔고, 예루살렘 성전은 그 중심이었다. 그러나 로마는 황제를 신격화했고, 총독 게시우스 플로루스는 성전 금고를 약탈하며 시민을 학살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억압이 아니라 신앙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졌다.
반란은 생존을 넘어 정체성의 문제였다. 굴복은 곧 신앙의 부정이었고, 그래서 무모해 보이는 투쟁이 시작되었다. 그들에게 싸움은 승리의 가능성보다 ‘존재의 의미’를 지키는 문제에 가까웠다.
2. 예루살렘의 함락과 마지막 거점
서기 70년, 로마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파괴했다.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노예가 되었다. 성전의 붕괴는 단순한 도시의 함락이 아니라 한 민족의 중심이 무너진 사건이었다.
그러나 일부 급진 세력인 시카리(Sicarii)는 사막의 마사다로 이동했다. 이 요새는 원래 헤롯 대왕이 비상 피난처로 확장해 두었던 곳이었다. 저장고와 물 저장 시설이 완비되어 있었고, 수년간 버틸 수 있는 식량이 확보되어 있었다. 약 900여 명의 남녀노소가 이곳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마지막 항전을 준비했다.
마사다는 단순한 군사 거점이 아니라 “완전히 굴복하지 않았다”는 상징이 되었다. 예루살렘은 무너졌지만, 저항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3. 로마의 포위와 최후의 선택
서기 72~73년, 로마 제10군단은 마사다를 포위했다. 지휘관은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실바였다. 로마군은 요새를 둘러싸는 거대한 포위벽을 건설해 탈출을 차단했다. 지금도 사막 위에는 그 포위벽의 흔적이 남아 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공성 경사로 건설이었다. 절벽 한쪽에 흙과 돌을 쌓아 거대한 인공 경사로를 만들고, 그 위로 공성탑을 밀어 올렸다. 그 경사로는 오늘날에도 선명히 남아 있어, 로마의 집요함과 체계적인 군사력을 보여준다.
요새 안에서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면, 경사로가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모습이 보였을 것이다. 망치 소리와 돌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는 다가오는 결말을 예고하는 리듬처럼 울렸을지도 모른다.
요새가 무너질 것이 확실해졌을 때, 지도자 엘르아자르 벤 야이르는 로마의 노예가 되기보다 자유로운 죽음을 택하자고 연설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주민들은 제비를 뽑아 서로를 죽이고 마지막 한 사람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 기록의 정확성에는 논쟁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마사다는 단순한 패배의 장소가 아니라, 선택의 장소로 기억되었다.
4. 건축 구조 분석: 고립을 극대화한 요새 설계
마사다의 강점은 자연 지형을 극단적으로 활용한 설계에 있다. 고원은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정상부는 비교적 평평하다. 헤롯은 이 평탄한 공간을 따라 길게 성벽을 두르고, 망루를 배치했다.
요새 내부에는 다음과 같은 핵심 구조가 있었다.
- 대규모 곡물 저장고
- 빗물을 모아 저장하는 거대한 저수 시스템
- 왕궁 형태의 북쪽 궁전
- 병영과 거주 공간
특히 물 저장 시스템은 사막 환경에서 생존을 가능하게 한 핵심 요소였다. 빗물을 수로로 끌어 대형 저수조에 저장했고, 이는 장기 포위를 견딜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또한 접근 경로가 극히 제한적이었다. ‘뱀의 길’이라 불리는 좁은 통로는 방어에 유리했고, 절벽은 사실상 천연 성벽 역할을 했다. 마사다는 인공 구조물보다 자연 방어에 의존한 요새였다.
그러나 바로 그 완벽한 고립이 마지막 선택을 더욱 극단적으로 만들었다. 탈출로는 없었고, 외부 지원도 기대할 수 없었다. 구조적으로 완벽했던 요새는 동시에 운명을 가두는 공간이 되었다.

마무리: 승리하지 못했지만 사라지지 않은 이름
마사다는 군사적으로는 패배했다. 로마는 요새를 점령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마사다는 다른 의미를 얻었다. 그것은 단순한 전투의 장소가 아니라, 인간이 끝까지 붙잡으려 한 가치에 대한 질문이 남은 공간이다.
사막의 태양 아래 서 있으면, 바람이 절벽을 타고 올라온다. 그 바람은 침묵을 품고 있다. 그 침묵은 패배의 것이 아니라, 선택의 무게가 남긴 침묵처럼 느껴진다.
마사다 요새는 묻는다.
생존과 신념이 충돌할 때, 인간은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아직 그 답을 완전히 찾지 못했다.